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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매화문화축제

망마산 2010. 3. 22. 19:20

광양 매화 문화 축제

2010년 3월 21일 일요일

매화축제 기간 : 2010. 3. 13 ~ 3. 21 (9일간)

매실은 매화나무 열매

매화나무

 

매실은 매화나무의 열매이며, 그 원산지는 중국으로 되어있다. 우리나라에는 약 천 오백년 전에 들어와 우리의 선조들이 수백년 전부터

이 열매를 식용 또는 약용으로 사용하여 왔다.
세계적으로 매실의 산지는 동북아시아 즉 한국, 중국과 일본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남부지방에서만 생산되는,

지리적으로 특수성을 지닌 온대과실로써 중부이북의 매화나무는 꽃은 피지만 열매를 맺지 않는 특성을 보인다.

매실의 식품으로서의 가공법과 약리작용에 관해서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연구 끝에 그 놀랍고 신비스런 약효가 증명되어

전 일본국민의 건강식품으로 애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실주를 수십 년 전부터 상품화해 온 것 이외에는 최근에서야 매실음료가 나오게 되었고,

 매실을 이용한 전통매실 반찬은 광양의 청매실 농원에서 1994년 처음으로 상품화 하였다.

광양매실의 역사 - 광양매실의 자존심 홍쌍리 여사

광양매실 홍쌍리 여사

 

밀양태생으로 올해 68세인 홍쌍리 여사는 45년 전인 1965년 광양시 다압면 섬진마을 ″밤나무골 김영감님″의 아들인

김달웅(68세)씨에게로 시집와서 밤나무 1만주, 매실나무 5천주가 심기워진 7㏊의 산비탈 농장 청매실농원을 가꾸고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이다. 

하지만 홍여사는 몇 년 전부터 ″매실박사 홍쌍리″로 통하는 전국적인 유명인사이다. 최근에는 그녀의 명성이 동남아 식품박람회를 통해

 홍콩, 싱가폴에도 알려졌으니, 국제적인 유명인사가 된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홍쌍리 여사가 매실의 본고장인 광양매실의 자존심이라는 점이다. 광양매실의 자존심

홍쌍리여사의 유명세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아본다.

 


70년 전통의 매실식품 제조명인

청매실

 

홍쌍리 여사의 청매실농원은 매실식품의 맛이 좋고 약효가 좋기로 유명하고 또한 그 종류가 다양하기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청매실농원에서는 매실장아찌, 매실고추장아찌, 매실고추장 등 매실반찬을 만들고 있다.
홍쌍리 여사가 정식으로 매실전통식품제조업 허가를 받은 것은 1994년이고 1995년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매실전통식품 지정을 받았다

지금 만들어내고 있는 종류는 매실농축액, 매실장아찌, 매실청(차), 매실잼, 매실사탕, 매실젤리 등이 있다.
청매실 농원에서는 한결같이 매실식품을 전통제조법에 따라 만든다는 것이 오늘의 홍쌍리 씨를 있게 한 근본이며,

또 하나는 70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대를 이어오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면서 제품을 만들어 상품화하게 되었다는데 남다른 유명세의 원인이 있다.

물론 매실농축액 제조과정에서는 기계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제조공정중에 반드시 사람손을 거치게 되어 있어

매실농축액 제조도 완전 자동이 아닌 반자동으로 하고 있다.
  

청매실을 숙성·발효시키는 과정도 남다르다. 마당에 즐비하게 늘어선 300여개의 장독들, 숨쉬는 그릇인 전통용기로 구워낸 장독에

매실을 담아 수개월동안 발효하는 전통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또 청매실을 3개월 이상 보관하지 않고 반드시 3개월 이내에 제조작업을

마침으로써 매실식품의 신선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청매실 농원의 식품이 최고 품질을 갖기까지는

시아버지,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70년 전통에 보다 큰 근본이 있다.
홍쌍리 여사가 시아버지 김오천 선생과 시어머니의 매실식품 제조 활용법을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않고 눈썰미있게 새겨두면서

 끊임없이 묻고 연구한 끝에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시아버지 김오천 선생이 밤과 매실을

수확하기 시작한 1935년부터 74년간을, 홍쌍리 여사가 김씨 집안에 시집온 1965년부터 44년간을 매실 식품 제조에 매달려 온 것이다.
이제 홍쌍리 여사는 매실전통식품 제조자로서 유명인사가 되었고,

95년에는 “매실박사 홍쌍리의 매실미용 건강 이야기”라는 책을 써서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홍쌍리 여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더 좋은 식품을 만들기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 있다.

 

밤나무골 김영감님과 광양매실

오늘날 광양매실을 이야기하려면 광양뿐만아니라 전국적으로 통했던 밤나무골 김영감님인 김오천 선생이야기로부터 시작할 수 밖에없다.

 김영감님이 1931년 일본에서 밤나무 묘목과 함께 들여온 5,000주의 매화나무 묘목으로부터 광양매실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김오천선생은 1902년 11월 21일(음력)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일곱살 나던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가

 13년간의 광부생활로 돈을 모았고 1931년(30세때)에 귀국하면서 밤나무 1만주, 매실나무 5천주를 비롯하여

감나무, 배나무 등 양질의 신품종 묘목을 가지고 들어왔다.
3년동안에 가지고온 묘목을 심고 관리하던 김영감님은 나무 기우는데 필요한 기술과 돈을 구하기 위해 1934년 다시 일본에 들어가서

10년동안 일본과 광양의 고향집을 수없이 오고가면서 돈을 벌고 나무 키우는 기술을 익혔다.

김영감님은 두 번째로 일본에 들어가서는 당신이 광부생활을 했던 구천에서 광산을 경영하기도 했는데

인부를 수 십명이상 많을때는 1백여명까지 썼고 고향마을 사람들도 10여명에 달했다.
1944년에는 완전 귀국하여 다시 밤나무, 매실나무 키우는 일에 매달려 45만평의 임야를

밤산으로 만들었고 집주변 언덕배기에는 매화나무를 집중해서 키웠다.
또한 김오천옹은 1952년부터 매실의 상품화에도 앞장서 해마다 매실 한약재인 오매금매 수십가마를 만들어

구례, 순천, 하동 등지의 한약방에 공급하였으며, 매실농축액과 매실식초, 매실차 등 매실식품을 전통방식으로 만들어 널리 보급하였다.

   *오 매 :  덜익은 매실을 짚을 태운 불이나 나무뿌리의 연기로 구워서 햇볕에 말려 건조시킨 것으로
               까마
귀처럼 까맣게 도기 대문에 까마귀매실이라고 불리움

   *금 매 : 매실을 그물망에 담아 팔팔 끓는 물에 넣고1분 20초가량 삶은 후 햇볕에서 3~4일간 매실씨
              모양
같이 바짝 잘 말린 것.

 

 

 

각설이 타령중 

 

 

 복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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